훔쳐보는 일기2011/09/14 19:02

오늘은 사적인, 아주 오래 전 이야기를 하나 풀어볼까 합니다. 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봤을 소소한 이야기지만, 선선한 바람이 몸을 감싸는 가을이 되니, 십 수년이 지난 그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한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편의상 B라고 부르겠습니다.

B는 유복한 집안에서 외아들로 자랐습니다. 능력있는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아래서 걱정없이 자란 듯, 훤칠한 키와 뾰얀 피부, 수려한 외모는 또래 여학생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B에게는 남모를 '과거'가 있습니다. 반항기 충만한 10대 중반, 그는 자신의 집 근처의 강남역 타워레코드(지금은 사라진) 앞에서 친구들과 매일 모임을 갖고, 금지된 음주파티를 즐겼으며 결국 패싸움에 휘말려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퇴학 위기를 맞은 거죠.

놀라운 것은 반항을 일삼던 그가 학교에서 전교 1등을 다투던 수재였다는 사실입니다. B의 능력을 안타깝게 여긴 담임 선생님은 수소문 끝에 그를 받아줄 학교를 찾게 되고, 그는 곧 전학을 앞두게 됐습니다.

당시 그에게는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 법한 예쁜 외모를 가진 그녀는 그의 모임에 종종 나온 동갑내기였죠. 전학가기 며칠 전, B는 그 여학생에게 고백합니다. 그녀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답하고요.

전학날 아침, 대문을 나서는데 우편함에 무언가가 꽂혀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의 사진입니다. 사진을 받아 든 B는 기쁜 마음에 사진을 얼른 품안에 넣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전학을 가게 됐지만 그녀의 응원이라도 받은 양 기분이 날아갈 듯 신납니다.

때는 봄 햇살이 찬란한 5월 28일, 한강을 지나면서 그의 기분은 한껏 도취됩니다. 이른 아침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분들의 빗질소리까지 경쾌하게 들립니다. 그녀를 매일 볼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사진을 남겨둔 것은 긍정적인 의미가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B가 학교에 전학오던 날, 마침 그 날은 등교한 새 기숙사 학교에 체력장이 있는 날입니다. 삼삼오오 짝을 이룬 낯선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지만 B는 서먹하기만 합니다. 조금 오래도록......외로움도 느낍니다.

체력장이 끝난 저녁, 수고한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영화(비디오)를 보여준다 합니다. 당시 선생님들이 선택한 영화는 '편지'. 불치병에 걸린 박신양과 최진실의 눈물 어린 비극 러브스토리죠. 불 꺼진 어둑한 교실, B는 짝 없는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슬픈 영화를 외로운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영화가 눈물샘을 자극하는 크라이막스 즈음에 달했을 무렵, 문득 B는 품안에 넣어 둔 사진이 떠오릅니다. 정확히는, 사진의 뒷면이 떠오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꺼낸 사진 뒤에는 그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짤막한 편지가 적혀 있습니다. '전학가서 서운하네. 한동안 보지 못하겠구나. 잘 지내고, 나 사실 네 친구 C랑 사귀기로 했어. 미안해-'라는 내용입니다.

이른 새벽, 아는 이 하나 없는 학교로 전학가는 공허하고 쓸쓸한 마음이 사진 한장에 환해졌던 자신을 멍청하다 생각하며, '왜 사진을 뒤집어 볼 생각을 못했을까.' 라고 자책도 해봅니다. 그리고 홀로 구석에 앉은 B는 눈물을 흘립니다. 마침 영화 속 주인공도 하염없이 울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 B는 과거 제 친구입니다. 그는 제가 다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왔고, 저는 그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게 해 준 이야기들은 토씨 한두마디 제외하고는 거의 다 떠올릴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목소리와 말투까지도 말이죠.

제가 고된 기숙사 생활에 힘겨워 할 고2 즈음 그와 같은 서클을 하게 되며 친해졌고, 그는 무려 4시간의 전화통화를 통한 위로와 격려로 제게 큰 힘을 줬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그때 그에게 들었던 스토리 중 하나구요.

그저 '평범한' 고등학교 남학생의 '평범한' 짝사랑 이야기지만, 12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전 그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의 아픈 가정사와 사랑 이야기가 안타까워서, 친구 하나 없는 서먹하고 적막한 전학 첫 날 교실 맨 뒷자리에서 그녀의 사진을 보며 눈물 지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슬퍼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서 인듯 합니다.

봄은 그가 전학을 온 날이고, 여름은 그가 운동장에서 비행기를 보며 신나하던, 제게 가장 인상깊게 남은 그의 모습을 본 날이고, 가을은 그가 제게 이야기를 들려준 날이고, 겨울은 그가 제게 유일하게 추천한 곡인 'November Rain'(Guns N' Roses) 의 배경이 되는 날입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5월 봄이지만, 그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가을의 쓸쓸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마음 한 구석이 박하사탕을 삼킨 듯 알싸하기도 합니다.

위의 사진은 제가 유일하게 보관하던 그의 뒷모습입니다. 2004년 '몰래 훔쳐 온' 사진이니, 지금은 많이 변했겠죠. 물어물어 들으니,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이 글을 볼 일은 없겠지만, 본다 한들 옛 기억으로 서로를 보기에는 우린 너무나 많은 세상을 지나 왔습니다.

그래도 좁디 좁은 서울에서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말하고 싶습니다. 12년 전, 넌 기억 못할지도 모르는 작은 도움으로 다행히 잘 버티었다고. 풋풋한 청춘의 기억 하나 남겨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입니다.

추신, 그저 어린 시절 고마운 친구와의 기억일 뿐입니다. 남다른 감정을 개입한 오해는 말아주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무단으로 사진 썼다고 항의메일이나 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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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uimin
非개인적 일상2011/08/05 13:40

더워서 밖에는 나가고 싶지 않다며 사원식당 이용하시는 분들 많죠? 그런데 사원식당서 식사하고 나면 점심시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집니다. 쪽잠을 자자니 조금 아깝고, 비싼 베네 커피로 지갑을 혹사시키고 싶지도 않고...

그럴땐 제가 추천하는 네이버 웹툰을 보세요. 시원한 사무실서 공짜로 '후리후리'하게 즐길 수 있는데다, 웃음과 감동 교훈을 한바가지씩 안겨다주니 일석삼조가 따로 없네요.

수 많은 웹툰 중 제가 북마크 하고 보는 강추리스트, 이제 시작 합니다~

1. <생활의 참견> 김양수

작가인 김양수는 맬랑콜리한 청춘들을 상징하는 마니아매거진 '페이퍼'(PAPER)의 오랜 기자이자, 어린시절부터 만화가의 꿈을 접어본 적이 없는 나름(?) 유명인이예요.

<생활의 발견>은 그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페이퍼에서 연재를 시작했고, 단행본으로도 출간됐을 만큼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특히 그의 치열하고 버라이어티 한 과거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그의 주변인물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고 있기 때문에 보다보면 "아, 맞아! 나도 이럴때 있어!" 소리가 절로 나오죠.

최근에는
'362화 어른의 거울'(클릭하면 볼 수 있음)  편이 참 재밌었구요, 대체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가족드라마 느낌의 웹툰입니다.

옴니버스 식이라 1화부터 봐야 된다는 부담은 저 멀리~. 300편이나 다 되는걸 언제 앞에서부터 보냐고 투덜거리지 마시고, 아무거나 꾹 눌러 보세요.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360편 까짓거 금방일걸요?

2. <신과 함께> 주호민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으로 구성된 '신과 함께'는 현재 저승편이 완결되고 이승편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저승편의 일부인데요. 주인공인 저승의 변호사가 7가지 다양한 저승의 재판과 지옥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개인적으로 현재 연재중인 이승편보다 저승편을 매우 감명깊게 봤는데요, 그 이유는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저승이라는 공간을 무섭지 않게, 그리고 매우 리얼리티하게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망자는 저승으로 갈 때 반드시 타야 하는 지하철이 있고요, 저승에 가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생전에 어떤 죄를 얼만큼 지었는지에 따라 실력이 천차만별인 변호사를 고를 수도 있고요. 

저승의 변호사는 저승사자와는 다릅니다. 저승사자는 흔히 알고 있듯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망자를 데려오는 역할을 하지만, 저승의 변호사는 이승의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망자를 변론해야 합니다.

저승편에서는 나이 쉰이 다 되어가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일에 찌들어 살던 한 남자가 과로로 세상을 떠나며 저승에서 7단계의 지옥재판을 거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묘사되는 각 지옥의 모습은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데요, 작가가 직접 전국 8도의 사찰을 돌며 지옥도를 연구하고 이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랍니다.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짓는지, 그 죗값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세상을 떠나는 사람과 이승에 남는 사람들의 아픈 사연 등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교훈적이지만 지루하지 않는, 사후세계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더더욱 흥미를 느낄만 한 작품입니다.

다만 각 회마다 에피소드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1화부터 차분히 보시라 권하고 싶네요.

여길 클릭하면 <신과 함께> 저승편에 합승할 수 있어요!

3. <놓지마 정신줄>  글-신태훈, 그림-나승훈


<놓지마 정신줄>은 살면서 자주 정신을 놓고 허우적대는 직장인들 뿐 아니라 주부, 아버지, 학생 등 연령과 직급과 호칭에 상관없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생활형 웹툽입니다.

주인공은 머리에 줄 하나씩을 달고 사는 정신이네 가족. 누군가 정신놓고 행동하면 머리 위에 있는 줄이 휑~끊어지는데요. 위의 그림에서 보시면, 예의없기로 소문난 정신이 동생 머리에는 아예 줄이 없고, 그런 딸을 보는 뒤의 정신이 엄마는 막 줄을 놓쳤네요...남의 집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다...쩝.

여튼, <생활의 참견>보다는 판타지 성향이 강하지만, 그림 만큼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위 그림 속 아이를 보세요...정말 내 눈앞에서 아이가 유치원 가기 싫다고 떼쓰는 것 같은 느낌이...)작품입니다.

워낙 인기가 많은 작품과 작가들이다 보니 종종 이벤트도 하는데요. 작품 속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와 머그컵 등을 소량으로 판매하더라구요. 보다 반하신 분들은 광클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이 작품 역시 '생활의 참견'과 마찬가지로 옴니버스 식이라 각 회를 따로 보셔도 무리 없으셔요.

여길 클릭하면 <놓지마 정신줄> 가족을 만날 수 있어요!

4. <목욕의 신> 하일권

파라다이스를 연상케 하는 이곳은 다름 아닌 목.욕.탕!! 주인공은 '허세'라는 이름의 허세작렬하는 20대 중반의 청년입니다.

백수주제에, 어깨 좋은 형님들한테 돈을 끌어다 유흥비로 탕진한 탓에 쫓기던 도중 이 블링블링한 목욕탕으로 피신하는데요. 그는 우연히 이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합니다. 바로 '때밀이'.

이곳 회장으로부터 때밀이로서 완벽한 자질을 갖췄다고 극찬을 받고, 빚을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때밀이 일을 시작한 허세군.

놀라운 것은 이 목욕탕에서 때밀이로 일하는 남녀 직원 모두 빼어난 외모와 착한 몸매를 자랑한다는 사실이죠...흠흠.

연재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작품이라 다음 화 기다리는 맛이 쫀쫀합니다.

여길 클릭하면 <목욕의 신>의 초호화 럭셔리 블록버스터급 목욕탕을 만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지루한 일상에서 작지만 배꼽이 빠질 듯한 웃음을 선사하는 완소 웹툰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더 재미있는 작품도 많겠지만, 위의 것들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골라 본 것들이니 태클은 사양할께요.

참고로 위의 웹툰들은 '네이버웹툰앱'을 통해서도 볼 수 있으니, 자주 보고, 많이 웃고,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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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uimin
공연이야기2011/08/01 15:39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지난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어땠냐고 물으신다면, 딱 두 마디로 대답하렵니다. "오 마이갓! 판,타스틱~!"

낚시의자 하나를 어깨에 짊어지고 간 그곳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습니다. 달콤쌉살한 오렌지보드카와 시원한 맥주, 가슴까지 뛰게 만드는 멋진 음악과 아티스트, 그리고 '착한 몸매'자랑하는 훈훈한 외국인 아저씨들 까지...

산을 끼고 위치한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신선놀음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한 손에 오렌지 보드카를 쥐고 생생한 라이브를 듣고 있으니 "오늘만 같아라."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산들바람이 살금살금 볼을 간질일 땐 절로 미소가 납니다.

록 음악을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 음악은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니까요. 그저 느끼는대로 즐기면 됩니다. 그게 이 축제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축제라고 생각한다면 노노, 틀렸습니다. 가족 단위로 소풍 온 관객도 있고, 아이들 떼어놓고 온 중년의 부부도 눈에 띕니다. 물론 청각에 문제(높은 데시벨을 감당하기 어려운)가 있는 분들이나 심신이 허약하신 분들은 '초큼' 고민하셔야 할 것 같네요.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라며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하다 서울에 오니 잠시 꿈을 꾼 듯한 느낌도 듭니다. TV에서만 보던 유명 록페스티벌을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나니 해외여행 쯤 다녀온 기분도 납니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눈치를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맘먹은대로, 생각한대로, 말하는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Because of It's Festival!! 축제니까요-

▶더 적나라한 리뷰는 여기 클릭(한번만 눌러주면 안 잡아 먹을걸? +_+)


글·사진·편집=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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